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로베우스 왕조 (문단 편집) ==== 내전 재개와 프레데군트의 최후 ==== 592년, 그동안 프레데군트와 종종 대립하면서도 브룬힐트와 그녀의 대결을 최대한 막던 군트람이 사망했다. 이제 방해자가 사라지자, 브룬힐트와 킬데베르 2세는 오랜 숙적 프레데군트와 클로타르 2세를 타도하려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592년 또는 593년, 브룬힐트는 네우스트리아로 쳐들어가서 수아송의 드로슈에서 프레데군트의 적군과 격돌했다. 프레데리가 연대기에 따르면, 양측 모두 막대한 손실을 입은 후 전투를 중단했다고 한다. 한편, 브룬힐트와 킬데베르 2세는 군트람이 생전에 굴복시키려 했지만 연전연패하면서 끝내 실패했고 이후에도 변경 지역을 약탈하는 브르타뉴의 바로스 2세를 제압하기로 하고 594년 토벌대를 파견했다. 원정 결과가 어땠는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브르타뉴가 이후로 조용해진 것을 볼 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듯하다. 595년, 튀링겐과 북해 살기에 살던 바르네스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크군은 즉시 투입되어 이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이 지역에 대한 프랑크의 주권이 복원되었다. 한편 바이에른 왕 가리발트 1세가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독립할 낌새를 보이자, 킬데베르 2세는 바이레른으로 쳐들어가서 그를 축출하고 타실로 1세를 왕위에 올렸다. 이렇듯 대외에서 문제가 연이어 터졌기 때문에, 네우스트리아의 숙적 프레데군트를 축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596년 초, 킬데베르 2세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프레데가르는 그가 아내 페일루바와 함께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별다른 근거는 없으며 단지 소문일 뿐임을 인정했다. 사후에 각각 10살과 9살인 두 아들 '''[[테우데베르 2세]]'''와 '''[[테우데리크 2세]]'''가 왕위에 올랐고, 브룬힐트가 섭정을 맡았다. 이 소식을 접한 프레데군트는 지금이야말로 브룬힐트를 물리치고 프랑크 왕국 전역을 제패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12살의 아들 클로타르 2세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파리로 진격했다. 몇몇 아우스트리아 귀족들의 호응 덕분에 일드 프랑스 일부 지역을 확보한 후, 프레데군트는 아우스트라시아 왕국 영내로 진입했다. 이윽고 수아송 인근의 라포에서, 네우스트리아와 아우스트라시아군이 맞붙었다. 막대한 희생자를 양산한 이 전투에서 승리한 프레데군트는 여세를 몰아 아우스트라시아의 수도 메츠로 진격하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폐렴]]에 걸려 쓰러졌고, 1년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사망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녀는 병상에 누워서도 브룬힐트를 잡아오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